“그리고 이제 지난 건가요?”

 

 

뉴욕은 소유물의 대성당이었다. 그 냄새조차 꿈이었다. 이 도시에선 거부당한 사람들조차 떠나지 못했다.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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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의 시야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삶이 어떨지 한순간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만약 그녀가 눈앞에 있어도 아무 말 못하거나, 아니면 최악으로, 바로 후회할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말아서, 아주 한심하고 평범한 남자의 전형을 보여줄 것이었다. 멀리서 통근하는 유부남에게 딱 어울리는.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건 전혀 내가 아니라고요.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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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지식을 경멸한다. 지식 따윈 대기실에서, 밖에 앉아 기다리라고 한다. 인생이 숭배하는 건 열정과 에너지와 거짓말이다. (중략) 완전한 삶이란 없다. 그 조각만이 있을 뿐.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빠져나갈 이 모든 것들, 만남과 몸부림과 꿈은 계속 퍼붓고 흘러넘친다……. 우리는 거북이처럼 생각을 없애야 한다. 결의가 굳고 눈이 멀어야 한다. 무엇을 하건, 무엇을 하지 않건 그 반대는 하지 못한다. 행동은 그 대안을 파괴한다. 이것이 인생의 역설이다. 그래서 인생은 선택의 문제이고, 선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되돌릴 수 없을 뿐이다. 바다에 돌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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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이들이 항상 기억할 한 문장을 생각해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아우르고, 갈 길을 알려주는 그런 하나의 경구. 하지만 그는 그 문장을 찾아내지도, 생각해내지도 못했다. 그들이 소유한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될텐데 그에겐 그게 없다.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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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행복했는가? 너무 진지한 질문이어서 오히려 가벼웠다. 꿈을 꾸어도 절대로 하지 못할 일들이 있었다. 그는 종종 자신의 인생을 가늠해보았다. 아직 젊지만 앞에 놓인 세월이 끝없는 고통처럼 느껴졌다.

(중략)

“그래. 행복한 것 같아.”

침묵. 앞의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가 운전하도록 병을 받았다.

“하지만 정말 바보 같은 생각 아닌가?” 그녀가 물었다. “진짜로 생각해보면 말이야.”

“행복 말야?

“크리슈나무르티가 뭐라고 말한 줄 알아?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모두가 완전히 이기적이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만 얻는다면 모든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런데 그게 행복인가?

“모르지.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물론 불행한 거지.

“생각을 해봐야겠는데.” 그가 말했다. “원하는 것을 한 번도 얻지 못하면 그건 불행이겠지. 하지만 앞으로 얻을 가능성만 있다면….” p.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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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방종한 사람이었고 실패자였다. 실패를 붙들고 살았다. 실패는 그의 주소이자 거리였고,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의 인생은 친밀함과 배신의 연속이었다. 자신에 관해 그는 이렇게 썼다. 씀씀이가 헤프고, 거짓되었다고. 그는 비현실적으고 변덕스럽고 변태적이었다. 여자처럼 괴로워하고 여자처럼 사랑했다. 날씨와 레스토랑의 메뉴 따위를 기억했고, 서랍 속 끊어진 목걸이 같은, 그런 일들을 기억했다. 그는 모든 걸 담아둔다고, 스스로 말했다. 가슴을 탕탕 치면서 여기에 담아둔다, 고 했다.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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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기 자신의 시체였다. 그의 안에는 살인자가, 옷을 반쯤 벗고 바닥에 엎어진 여자가 있었다.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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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거울을 보았다. 갑자기 환상 없이 똑바로 자신을 보았다. 중년이었다. 예전에 자신에게서 보았던 젊은이는 이제 없었다.

(중략) 사방이 조용했고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거의 잊었던 세월들, 실패, 옛날 이름들. ‘1960년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해’라고 적었다. 그리고는 그 밑에, ‘모든 걸 잃다’라고 썼다.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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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한 계절밖에 없는 걸까요? 여름 한철?”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이제 지난 건가요?”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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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중요한 깨달음 중 하나는 꿈꾼 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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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서, 이 바다에서 그는 혼자였다. 그 주변으로 날들이 흩어져 있었고, 그는 날들을 마시고 취하는 술꾼 같았다. 그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삶이 있었지만 별 가치가 없는 삶이었다. 끝날 때 끝나더라도 뭔가 이루었던 삶과는 달랐다. 내게 용기가 있었다면, 믿음이 있었다면, 그는 생각했다. 우리는 마치 중요한 일을 수행하듯 우리 자신을 보존한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다른 사람을 희생시킨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장해둔다. 남들이 실패하면 우리가 성공한 것이고, 남들이 바보 같으면 우리는 현명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부여잡고 나아간다.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p.421

 

 

- 제임스 설터, 가벼운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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