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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그리운 날에는 혼잣말을 한다

망한 우주 2014. 2. 4. 23:29

 

 

숫자 1은 0을 불문에 붙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했다

다만 부재하는 모든 것으로 밤은 시작된다고 나는 말할 수 있을까

 

목소리가 그리운 날에는 혼잣말을 한다

 

눈을 감으면 시공을 날아가는 흰 침대 속 부겐빌레아 꽃그늘

물 항아리를 들고 섰던 1939년 코르도바의 처녀는 어디로 갔나

 

생의 한때를 끓고 있는 주전자를 보면 생각난다

터키인 가게에서 산 전기포트로 국경의 도시에서 끓여먹던 국물 맛

내 구식 축음기에서는 되돌려지지 않는 영화음악들

 

여름 어스름이었는데 사람들은 가죽 점퍼를 꺼내 입고

비 오는 거리를 지나 어디로든 가기 위해 서두르고 있었지

여름옷뿐인 가난한 여행자들은 덜덜 떨며 빗물 젖은 이정표를 읽었네

 

무엇이 그렇게 길 위를 서성이게 했는지 묻지는 마

맨 처음 하나였던 알은 두 개로 갈라져 땅으로 던져졌고

늪 속에 빠진 반쪽은 찾을 길 없어

길 위를 헤매며 늙어만 가네

 

이제는 하루분의 먹이를 다투던 수컷들도 먼 초원을 응시하는 시간

목마른 밤이면 아무렇게나 맺힌 들판의 열매를 먹고 지나온 길들은 다 잊었네

두고 온 정원도 없이 기다리는 고양이도 하나 없이 여기 선 나를 위해

박수를 쳐봐

 

 

- 리산, 서쪽의 국경수비대